대기업 다니던 겜덕후가 OP.GG의 기획자로서 배운 것들

OP.GG에 들어오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적부터 밤을 새가며 컴퓨터게임을 하고, 스타리그가 있는 금요일이면 학원도 빠지면서 챙겨봤던 저는 남들보다는 게임에 좀 더 많은 열정이 있었고, 그래서 항상 “게임과 관련된 일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유년기를 보내왔습니다.

게임 쪽에서도 제가 유난히 관심이 있던 부분은 e스포츠의 통계분석 분야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팬으로 자라온 저에게, 야구에서의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 야구에서 게임이론과 통계학적인 접근으로 선수의 가치를 분석하는 방법) 는 저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선수로서의 경험이나 직관이 부족하더라도, 데이터로 행동을 분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운영과 전략을 짜는 방식이 크게 성공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디지털 게임인 e스포츠 역시 그런 식의 접근이 가능할거라고 늘 믿어왔었습니다.

OP.GG라는 회사는 저와 그런 부분에서 많은 비전과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데이터 분석이 더 나은 게임을 만든다” 라는 회사 슬로건은,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오랜 기간동안 가지고 있던 생각의 핵심을 찌르는 문구이기도 했습니다. 이제껏 내 상상으로만, 혹은 입으로만 생각해오던 일을 해내려고 시도하는 회사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OP.GG가 막 태동한 스타트업이라는 사실도 저에게는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미국의 한 대기업에서 컨설턴트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몇 년간의 회사생활에서 느낀건 제가 발전하고 있다라는 느낌이 아니라 하나의 부품처럼 쓰여지고 있다라는 우려였습니다. 제 의견이 반영되기 보다는, 위에서 계획이 내려지면 그것을 주어진대로만 따랐고, 승진을 통해 어느정도의 위치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상사가 원하는대로만 일을 해야한다는것에 회의감을 느끼던 참이였습니다.

 

안정적인 생활, 괜찮은 수입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미래가 불투명한 스타트업에 들어간다는건 저에게는 나름의 모험이였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꿈을 실현시켜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OP.GG의 기획자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제 명함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내가 OP.GG 에서 일한다니!]

 

Product Manager, 그 험난한 첫걸음

저의 명함에 Product Manager라는 직함이 붙고, 저는 OP.GG의 많은 제품들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짧게는 OP.GG의 리그오브레전드 서비스에서부터, 요즘은 곧 출시될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배틀그라운드의 전적검색까지, 담당하게 된 일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업무량은 그 이상으로 넘쳐났습니다.

한 프로덕트가 출시되는 진행 과정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제가 담당하는 서비스에 들어가야 할 새로운 기능들(혹은 보완할 기능들)을 머리로 짜내고, 그 계획을 디자이너와 개발자에게 전달한 뒤, 그것이 실제로 개발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일정을 관리하는 것이 전체적인 제 역할입니다. 개발이 어느정도 완료되면 테스트에, QA작업까지 해야 하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겠죠.

 

[Product 출시 과정을 간단하게 보여주는 플로우 차트입니다. 저렇게 보면 참 쉽죠?]
많은 사람들이 기획자라는 직업을 들을때, 보편적으로 첫 두 단계 – 분석/고안 후 기획을 하여서 개발팀에게 전달해주는 일이 큰 업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저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잘 전달 해주는 매개체가 필요합니다. 흔히 말하는 “기획서”가 이 단계에서 만들어지게 되죠. (기획서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해볼까 합니다.)

보통 2주에서 3주정도 소요되는 기획서 작성이 끝나면 한시름 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짜 업무는 그 곳에서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제 머리로부터 나온 기획서를 디자이너/개발자 분들이 잘 이해하게 만들기 위해 계속 설명해야하고, 그분들이 제가 기획단계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을 지적할 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신속한 판단력도 필요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개발팀이 마침내 의도한대로 코딩을 하더라도, 완성된 제품에서 생각하지도 못한 버그나 오류가 언제든지 나타날 수도 있는거니까요.

제가 맡은 첫 제품의 출시를 몇 주 앞 둔 무렵에서야, 저는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OP.GG의 기획자는 제품 기획을 넘어, Project Manager의 역할도 함께 맡아야 한다는 것을요.

 

Product + Project Manager = OP.GG의 기획자

Product와 Project, 둘 다 P로 시작하는 이 두 단어는 어떻게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 둘은 명확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Product Manager가 제품의 완성도를 위해 유저의 니즈를 파악하고 UI나 UX, 그리고 기능적인 노력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면, Project Manager는 그 제품을 만드는데 있어서의 과정을 컨트롤하고 그 사이에 잡음이 생기지 않게 관리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컨설턴트로 다른 클라이언트들의 프로젝트를 맡을때, 모든 프로젝트에서는 Product와 Project를 담당하는 사람은 따로 존재했습니다. 한 명이 맡아서 모두 해내기엔 조금은 벅찬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나열했지만,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을겁니다.]
프로젝트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프로덕트를 기획하는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 순간부터, 많은 현실적인 물음들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A라는 개발자가 당장 다음주부터 B라는 더 급한 프로젝트에 참여해야해서 리소스가 부족하다”

“기술적으로 가능할 줄 알았는데, 서버 트래픽의 문제로 구현하기 어려운 기능이다”

“당장 1달뒤가 예정되어있는 릴리즈인데, 부탁한 기능들을 다 구현하기엔 어려워서 몇가지는 쳐 내야한다.”

 

구상했던 기능들의 구현이 어려워지고, 시간과 예산의 문제로 원래의 기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것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워 했었습니다. 그런 변화에 따라서 노력한 개발진들이 느낄 수 있는 허탈함을 이해하고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것 역시 저의 역할이기도 했구요.

이러한 이슈들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제가 처음에 생각했던 기획자의 “게임의 본질을 파악하는 센스”나, “유저의 마음을 읽는 눈”은 막상 이때만큼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입사하기 전, 저는 OP.GG의 기획자에게 가장 중요한 소양이라고 한다면 “창의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전례없이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게임 전문 데이터 서비스 업체”인 OP.GG의 기획자라면 더욱 필요한 것이 상상의 날개와 얽매이지 않은 생각의 깊이라고 믿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Product Manager로서의 나의 욕심과 상상력을 억제해줘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Project Manager로서의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멀티플레이어가 되다

패기 넘치던 제가 현실에 부딪혀 약간은 주춤하고 있을 무렵, 저는 OP.GG에서 준비중인 신규 서비스와 관련해서 일부의 유저들을 저희 사무실로 초대하여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초대한 OP.GG의 유저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였는데, 그들이 저희 회사에 가지고 있는 비전과 바라는 점들은 마치 알람처럼 저를 깨워줬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 그 이상으로 많은 생각과 저희 사이트에 대한 제안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기획자로서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프로젝트 매니징에 어느정도 요령이 붙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기획자로서 많은 성찰을 하게 됩니다. 프로젝트 매니징이 현실적인 이슈에 부딪혀서 많은 관리와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더라도, 그것이 기획자의 도전정신과 실험적인 태도를 좌절시킬 것 까지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관리는 관리 나름대로 하면서, 기획자로서의 욕심과 의욕은 계속해서 높게 유지시킬 수 있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마치 미드라이너로 출발했지만 최정상의 정글러가 된 삼성 갤럭시의 앰비션 선수처럼, 멀티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제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로덕트 매니징과 프로젝트 매니징, OP.GG의 기획자라면 해야 하는 두 가지의 다른 역할이지만, 이 역시도 어느정도 익숙해지니 공통된 분모가 있구나 라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게임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 욕심과 열정, 그리고 그것을 팀원들에게 잘 전달하는 지속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소통은 제가 가지고 있던 기획자로서의 소양들이였습니다. 여러 일들을 겪으며, 기획자로서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찾아내기 시작하자,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예전 직장에선 쉽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였습니다.

 

[2017년 11월의 오피지지 사무실. 내년 이맘때쯤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마무리하며

원래는 디자인 팀이나 개발팀이 주로 적던 OP.GG 블로그 글을 저도 한번 쓰겠다는 마음을 먹었을때, 저는 크게 세가지의 목적으로 이 글을 적고 싶었습니다.

첫째로 저 스스로를 위해서 지난 6개월간의 발자취를 어느정도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단언컨데, 2017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바쁜 한 해였습니다. 단 한번의 주말도 일에 신경을 끈 채 지내본적이 없고, 추석 연휴때도 자발적으로 출근하는 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일한 한 해로 기억될것 같고, 그 것을 기념하면서 제가 느끼고 배운 것들을 글로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두번째로는 이 기회를 통해 저와 함께 일하고 있는 OP.GG의 동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도 느끼셨겠지만, 저는 지난 6개월동안 기획자로서 정말 많은것을 배워왔습니다. 그것이 단편적으로 보면 저의 계발을 도왔을지 몰라도, 어느정도의 시행착오가 있었던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저와 함께 일해온 주변 사람들이 제 의도와는 달리 어려움을 느꼈을수도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금은 더 나은 기획자, 회사의 일원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불평불만 없이 묵묵하게 맡은 일을 다 해준 동료분들께도 진심어린 감사를 전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이 글을 읽는, OP.GG에 입사를 희망하는 (혹은 지원서 각을 재보고 있는) 예비 기획자분들에게, “OP.GG에서의 기획자는 이런 일을 한다” 라고 간단하게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기획자는 쉬운 직업이 아니며, 단순히 “게임만 좋아하는데 개발은 할 줄 모르니까 기획이나 해야겠다” 라는 마인드라면 추천하는 포지션은 아닙니다.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하고, 그 누구보다도 디테일에 집착하면서도 넓은 시야를 가져야합니다.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닌만큼 재밌는 일이기도 합니다. OP.GG의 일원으로서 가장 크게 배운것이 있다면, 내가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가슴이 두근되고 심장이 뛰는것을 느낄수 있구나라는 보람과 뿌듯함이였습니다. 그것은 제가 원래 미국에 있을때 느꼈던 안정감이나 편안함과 교환할만한 가치가 있는 선택이였습니다. 그리고 저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좋아하고, 때로는 5대5 내전도 할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건 정말 즐거운 일인 것 같습니다. (OP.GG의 내전은 롤챔스를 방불케 할정도로 진지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그리고 회사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긴 글을 마칩니다.

3 thoughts on “대기업 다니던 겜덕후가 OP.GG의 기획자로서 배운 것들

  1. 정말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곧 출시예정인 배틀그라운드 전적싸이트도 기대하고 있고 대박났으면 좋겠습니닿ㅎㅎ 저는 op.gg를 응원하고 좋아합니다. 명함 정말 멋있습니다 부럽네요

  2. 배그 때문에 우연히 검색했다가 잘 보고 갑니다.
    컴퓨터 공학과 나왔다면 한번 지원해봤을텐데 아쉽네요.
    여러 배그전적 싸이트 중에서 제일 잘 된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들리겠습니다.

  3. op.gg가 개인이 만든 페이지 인줄 알았는데, 스타트업으로 성장하고 있다니 조금 놀랐습니다. 많은 고민과 고민이 묻어나는 페이지네요. 궁금한것도 많지만, 역시 제가 모르는 세상은 아직도 많은 거겠죠. ^^

    구글 애널리틱스와 페이스북 애널리틱스 이외에도 여러곳의 지표 사이트를 비교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게임 개발과 다르기 때문에 프로세스를 논하긴 어렵겠지만, 유니티 애널리틱스나 앱스플라이어, 탭조이 같은 툴도 지표를 정재하고 뽑아내기에 좋을 것 같아 추천 드립니다. (담당자님은 대시보드가 늘면 더 고생하시겠지만 ㅎㅎ)

    개인적으로 홈페이지를 보며 아쉬운 점은 광고 노출 위치였습니다. 광고도 CVR과 CTR이 올라가면 Revenue가 늘텐데 왜 같은 광고가 화면 깨진것 처럼 노출 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해외 유저의 DAU가 국내 DAU보다 높다면, 광고 역시 미디에이션을 붙이는게 수익 면에서는 더 유리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돈 이야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그쪽에 관심이 많아서 ㅎㅎ. 이미 미디에이션으로 붙였다면 죄송합니다.)

    제 생각보다 더 전문적인 분들이 팀을 만들어 성장하고 계실거라 기대 합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스타트업의 모습이라 한번 더 놀랐습니다.

    벤처의 새로운 목표점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 (전적 검색만 하다가 괜히 스타트업이라는 것을 알고 응원을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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